2호 - Personal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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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2023/9/7 00:00
『펨텍톡(FEM TECH TALK)』은 기술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를 현재의 이슈와 연결해 보는 기술 비평 진(Zine)을 지향합니다.
이번 2호의 주제는 ‘Personal Science(개인 과학)’입니다. 이 말은 이후 실린 글에서 자세히 설명될 테지만, 과학이 과연 ‘개인적’, ‘사적’인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건강, 의료, 돌봄의 영역에서 과학과 기술이 유일한 혹은 유망한 해결로 인식되는 사회적 경향을 볼 때, 개인의 주체성이 확보될 수 있는지를 묻고 있죠. 이는 지난 호에서 살펴본, 인공지능 거대 언어모델이 영향력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과 그 속에서 필요한 논의들이 생략되는 현상과도 닮았습니다. 헬스 케어라고 일컫는 산업 영역에서 기술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습을 여러 각도로 조명해 보면서 건강이라는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에 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건강은 단순히 누군가의 신체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에서 정신적·심리적 상태로 확장되며, 사용자-환자-약자, 결국 큰 의미에서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까지 포괄합니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이자 최근 몇 년간 헬스 테크 업계에 몸담아 온 박지니의 글이 포문을 열고 있습니다. 의료 영역에서 기술이 권력화되는 사회적 배경 아래 환자와 개인이 수동적인 존재로 배제되는 실상을 다양한 예시로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주체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어지는 Sara Riggare의 두 글도 바로 그중 하나입니다. Sara의 두 글 중 첫 번째 글은 그녀가 남긴 블로그 포스팅을 시간순으로 묶어 환자이자 연구자로서 글쓴이의 문제의식이 축적되는 과정을 따라가게 합니다. 두 번째 글은 자기 주도에 의한 ‘개인 과학’의 의미를 요약하여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글의 성격이 다르기에 함께 묶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기 기록이 주는 힘에 감응되어 수록할 글을 고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기획 과정에서 Sara Riggare를 소개해 주신 박지니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매호 연재되는 기술 에세이에서는 주짓수와 나사를 통해 신체적 한계를 전복하는 기술에 주목합니다. 도우리의 리뷰에서는 디지털 접근성에 관한 일화를 언급하며 기술 수치심과 같은 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되는 감정에 관해 논의를 제기합니다. 그리고 매호 소개하는 CCC의 이번 주제는 형평성과 정의입니다. 컴퓨터 과학이 우리의 다양성을 지우고 사회적 억압을 강화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십자말풀이 퀴즈 ‘건강한 몸을 위한 체크 리스트’에서 본 호의 주제와 관련된 어휘를 되짚으며 기술 사회가 돋우는 피로감을 진단해 보시길 바랍니다. 지난 호의 십자말풀이가 어려웠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창간호라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음을 인정하며 오래 기다려 주신 지난 호 정답을 수록합니다. 『펨텍톡』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총 여섯 번에 걸쳐 발간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독자분들의 참여와 의견을 기다립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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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식과 지능을 갖는가 - 박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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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개인과학의 연구자가 되었을까? - Sara Rigg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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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파킨슨병을 추적하며 배운 가장 중요한 5가지 - Sara Rigg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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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주짓수와 나사, 힘의 논리를 뒤집기 - 전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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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모두가 디지털 틀니를 끼운다 - 도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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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Critically Conscious Computing: CS, Equity, and Justice - Amy J. Ko and Anne Beit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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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말풀이) 건강한 몸을 위한 체크 리스트
5
모두가 디지털 틀니를 끼운다
- 배리어 프리에 누락된 기술 감정 가시화하기
도우리
올해 초 막냇동생의 대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막내의 졸업은 곧 우리 집안에서 학생 신분인 구성원도 끝이라는 의미여서인지, 각자 치렀던 나와 둘째 때와 달리 혈연 가족이 모두 모였다. 캠퍼스에서 실컷 기념사진을 찍다가 해 질 무렵 예약해 둔 식당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았다. “큰딸, 이게 뭔 말이야?” 엄마가 내게 자신의 갤럭시폰을 내밀며 말했다. 확인해 보니 역시나 보험을 권하는 스팸 메시지였는데, 장문인 데다 폰트 크기가 최소치여서 엄마가 그 내용을 파악하기에 힘들어 보였다. 엄마가 우리 없이 혼자 지낼 때도 스마트폰과 잘 지내려면 근본적인 조처가 필요했다. “엄마, 이거 폰트 크기 키우면 편히 볼 수 있어. 내가 키워 줄게.” 그러자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그러면 사람들이 욕해. 나이 먹어서 글씨를 무식하게 키워서 본다고.” 그리고 사람들은 이렇게 우리가 앉아 있는 대중교통에서 서로의 화면을 모르는 척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벙쪘다, 총 세 번. 먼저 나도 공공장소에서 폰트 크기를 최대치로 설정한 중장년층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글씨가 너무 크다 고 생각한 적이 있다는 것, 그런데 엄마와 같은 중장년들은 그런 시선들을 모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엄마는 시각적 불편을 감수하기를 선택했다는 것. 그러니까 나는 폰트 크기에 연루된 기술 감정, 기술-수치심을 처음 인지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의 폰트 크기 조절 기능은 중장년층이나 저시력자 등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1 기능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배리어 프리한 폰트 크기가 커질수록 기술-수치심은 확장된다. (디지털 약자로서 존중받는 환경에 있지 않다면) 사람에 따라 우리 엄마처럼 커버링(covering·약자와 소수자가 주류에 부합하도록 남들이 선호하지 않는 정체성을 표현하지 않는 것)하거나 체념 혹은 억척스러움 같은 태도로 사적인 방어 기제를 세우고 있을 것이다.
기술 소외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소환되는 키오스크는 어떤가. 주로 노인이 식사하려 식당에 들어섰다가 키오스크를 다룰 줄 몰라 결국 음식 주문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들로, 이 문제에 대한 방안들은 대체로 배리어 프리 옵션을 따로 구현하자고 제시한다. 예를 들어 키오스크 첫 화면에서 우측 하단에 ‘시니어 모드’를 추가하면, 메뉴 선택 단계부터 화살표 등을 표시함으로써 어느 곳을 터치해야 할지 쉽게 안내할 수 있다2는 식이다.
하지만 주문을 채근하는 뒷사람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시니어 모드의 커다란 폰트와 투박한 UI 그리고 인간 목소리를 흉내 내는 어색한 AI의 안내 음성 소리에 연루된 기술-수치심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물론 이런 모드가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나을 테지만 그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감정을 가져야 하나? 우리 사회는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기술-수치심을 돌보는 사람은 작은 도움만으로 큰 혜택을 베푸는 입장이 된다.
디지털 효도의 작동 방식
언제부턴가 엄마와 오랜만에 만나면 ‘효녀’가 됐다. 엄마가 인천집에서 혼자 지낼 동안 기기나 소프트웨어에서 겪었던 어려움들 그리고 필요한 일들을 ‘몰아서’ 나에게 부탁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 업데이트나 카톡방에 사진 몰아 보내기와 같은 소소한 것부터, 아르바이트 이력서 작성 및 메일 지원과 연말정산 대신하기 등 조금 덜 소소한 것까지. 참으로 손쉬운 ‘디지털 효도’다. 올해부터는 인천여성가족재단의 수영 새벽반을 월마다 등록해 드리고 있다.
등록 당일이면 낮 12시가 되기 30분 전부터 인천여성가족재단 그리고 ‘네이비즘’ 사이트 창을 두 개 띄워둔다. 네이비즘(navyism)은 막내가 내게 ‘물려준’ 기술로, 원하는 사이트의 서버 시간을 알려주는 사이트다. 그래서 경쟁률이 높은 대학교 수강 신청, 공연 티켓 예매, 명절 기차표 예매 등 선착순 서비스가 시작되는 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 용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사이트로도 알려져 있다.
이 네이비즘에는 재미있는 서비스가 있는데, 특정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면 네티즌이 서버 이름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 변경의 역사까지 알 수 있다. 인천여성가족재단의 서버 이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나열3하면 다음과 같다.
인천여성가족재단 — 우리엄마수업듣게해줘야 — 인천딸들다모였겠네 — 엄마땜에왔으면개추일단나 — 수강신청한지5년지났는데,, — 울엄마수영해야돼~ — 엄마보다나먼저! — 아이고제발 — 내가잘배워서엄마구해줄 — 인천효녀들모여라 — 엄마내가해낼게! — 음~파!음~파! — 응~디!응~디! — 개빡치누 — 효녀타임 — 나도수영해보자
이 중 ‘엄마내가해낼게!’, ‘아이고제발’, ‘개빡치누’에서 엿볼 수 있는 건 온라인 수강 신청의 어려움이다. 특히 인천여성가족재단은 공공기관 사이트답게 온라인 결제가 원활하지 못하다. 어떤 때는 체크카드 앱 결재만 되고, 어느 달은 실시간 계좌이체만 되고, 또 지난달에는 무통장 입금만 되고… 나조차도 기술과 씨름하느라 몹시 답답한데(매번 그 감정이 엄마를 향할 수도 있다는 내적 긴장감을 의식한다) ‘엄마들’은 과연 수영 등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만약 딸이 없다면? 있어도 사이가 소원하거나, 딸이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면? 비혼 비출산을 지향하는 나의 먼 미래에는? 나라가 운영하는 ‘디지털 배움터4’의 직원에게 혈연 가족만큼 핀셋 디지털 돌봄을 요청할 수는 없으리라. 이렇게 디지털 돌봄은 ‘디지털 각자도생’의 환경에서 혈연 가족, 그중에서도 딸(여성)이 떠맡고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효도’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기술 수치
의외로 기술-수치심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도 연루돼 있다. 최근 미국의 이른바 Z세대를 중심으로 기술 수치(tech shame) 개념이 부상 중이라고 한다. 이들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프린터∙팩스∙복사기 등 고전적인 사무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데스크탑 PC의 전원 버튼이 어디에 있는지, 사내 유선 전화기에서 외부로 전화를 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쩔쩔매고 있어서다. 물론 과거에도 신입사원은 이들 기기를 다루는 데 어려워했다. 하지만 지금 Z세대는 기술이라면 전부 능숙히 다룰 거라고 기대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부끄러움이 기술 수치라는 것이다.
결국 기술-수치심은 연령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표준의 준거 집단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의 문제다. 같은 세대 내에서도 기술-계급으로 나뉜다. 인기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카페 전기 도둑’ 편에서는 한 남자(전상협 역)가 개인 카페에서 맥북과 유사한 색상의 LG그램 노트북을 꺼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자 그 친구(권혁수 역)가 “뭐냐, 맥북 따라 한 거냐? 너 이거 때문에 스타벅스 못 간 거지? 스타벅스 갔어야 됐는데"라며 타박한다. 맥북 표준 체제에서 LG그램 노트북은 수치심과 연루된다. 마찬가지로 에어팟 표준에서의 줄 이어폰, 인스타그래머블 이미지 표준에서의 갤럭시 휴대폰 카메라 이미지…
지금의 기술 표준은 ‘Apple’로 상징되는 ‘백인 중산층 비장애인 성인 남성’으로 설정돼 있기에, 기기의 크기와 UX/UI5 모두 그 표준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스마트폰 등장 이후 지인들의 전화번호를 못 외우는 사람들이 일반화된 건 노화가 아니라 ‘장려되는 노화(건망증)’가 된다.
또 지금은 기사 같은 온라인 콘텐츠에서 어디까지 읽거나 시청했는지 알려주는 상단 바 기능이 보편화됐는데, 이는 사실상 배리어 프리 기술인데도6 배리어 프리 기술이 적용된 지도 모른 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주의력 경쟁 체제 하에 ‘문화적 ADHD’가 집단 발병된 상황이기에 배리어 프리가 곧 표준이 된 것이다.
이러한 기술 표준은 결국 ‘청년성’으로 집약된다. 항상 과거와 단절하며 갱신하고, 매끄럽고 능숙하며, 빠른 속도를 유지하는 것. 그래서 사회학자 전상진이 저서 《세대 게임(문학과지성사, 2018)》에서 말했듯 연령적으로 청년이라 해서 청년성을 갖출 수 있는 건 아니다. 그 반대의 표상은 ‘노화’다. 진짜 치매는 아니지만 디지털 기기 과의존으로 우리 뇌가 스스로 정보를 기억하는 힘이 줄어 크고 작은 건망증이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노인 질환인 치매를 소환해 ‘영츠하이머(Young+Alzheimer)’라고 부르는 것이 그 예다.
이런 의미에서 얼리어답터는 디지털 틀니를 수시로 갈아끼는 자다. 결국 모두 기술의 시간성에 쫓기는 신세인데, 특정 기술에 능숙해지거나 최신 기기를 갖추는 것은 스스로 기술의 시간성을 먹어 치우는 주체라는 감각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청년성을 쟁취하고 노화를 피했다는 환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기술 감정에 연루되는, 잇몸처럼 취약한 존재다. 이 잇몸이 오히려 구원일 수 있다.
디지털 수치 대신 디지털 공분(公憤)으로
우리나라에서 노인의 ‘기술 분노’가 가시화된 건 2020년 9월 경기도 시흥에서 벌어진 휴대전화 대리점 방화 사건일 것이다. 당시 한 60대 여성은 해당 대리점에서 가입한 요금제 비용이 부담되어 해제시켜달라고 요구했지만, 직원이 기다려달라고 한 일주일 사이에 결국 불을 질렀다. 네티즌들은 이 여성의 분노에 대체로 공감하며 “할머니가 아니라 배트맨이었네. 할트맨”, “다크나이트 ㅇㅈ합니다”, “할머니가 총대 메고 앞장섰네”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해당 직원을 ‘폰팔이’라고 부르며 당해도 싸다는 반응이었다.
노인이 수치심이나 체념이 아닌 외현화하는 감정으로서 분노를 행사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결국 사적이고 파편화된 감정에 그쳤고, 불법 행위로 축소되었다. 또 네티즌들은 해당 여성이 겪은 일의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원인을 고찰하기보다 ‘폰팔이’라며 ‘용팔이(용산 컴퓨터 상가 판매 직원을 비하하는 말)’, ‘딸배(배달 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처럼 기술 업계의 가장 하단, 대중과 최접점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감정으로만 표출해 버렸다.
배리어 프리는 정치적인 감정을 고려하는 정치적인 관점이어야 한다. 옵션 기술의 구현이나 디지털 취약층이 디지털 다수자의 수준을 따라잡는 ‘안티에이징’ 차원이 아니다. 그래서 노인과 같은 디지털 약자들이 수치심으로 내면화하지 않고 ‘디지털 임파워링’을 통해 공적인 감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디지털 포용법7’이 통과되는 데 시민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 앞으로 키오스크 앞에 덕지덕지 쌓인 수치심의 시간만큼 약자를 존중하지 않는 정치권과 기술 기업에게 문제가 던져지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폰트 크기를 시원하게 키워 보면 좋겠다. 이 마음은 디지털 효심이 아니다.
도우리는 일상 문화 비평과 스토리 창작을 하는 작가 겸 기획자이다. 현재는 말과활아카데미와 한겨레엔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며 쓰기 관련 규칙, 문화, 역사, 제도로 관심을 넓히는 중이다. https://bit.ly/woorid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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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산업표준심의회가 심의해 제정(2022 개정)한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성 지침(국가표준(KS X 9211))’에 따르면, 의미 있는 시각 정보를 구성하는 모든 텍스트는 문자 높이가 12mm 이상이 되도록 표시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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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남동현·임영재, 「시니어 세대의 키오스크 사용성」,『대한인간공학회』.Vol.2021 No.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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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07.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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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시행하는 지원사업으로, 디지털 역량 교육을 운영하는 곳의 명칭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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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와 UI 모두 사용자 경험을 향상하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하는 분야다. 전자는 ‘User experience’의 약자로 사용자의 감정⋅서비스 인식 등 전반적인 경험을, 후자는 ‘User interface’의 약자로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화면⋅버튼⋅아이콘 등의 대면 요소를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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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디지털재단이 발행한 「고령층 친화 디지털 접근성 표준(키오스크 적용 가이드)」 Rule 2의 2번째 항목 ‘가시적인 설명과 조작 결과 안내하기’ 1번, 3번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과업 수행 시,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지 가시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안내하고 끝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심리적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메시지를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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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에는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국회의원이, 2022년 11월에는 국민의힘 박성중 국회의원이 디지털포용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정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