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 아래, 낯선 환호들
(실시간 스트리밍 토크) 4/24 8pm

품바는 변종 다양한 장르로서 사회의 부조리, 계급, 성별의 구분 짓지 않으며 두꺼운 팬층의 관객 앞에서 여러 경계를 넘나든다. 소수의 인터 섹슈얼, 젠더성도 엿볼 수 있으나, 세대 간의 표현차이, 상스러운 언어에서 오는 전달의 오류 등 사람들에게 이런 공연은 형식미에서 다소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 품바라는 기술을 쓰는 사람과 공감대에 따라 달라지는 관객의 성향은 무엇 때문일까?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기획자이자 품바알못 강민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살펴본다. 실시간 스트리밍 토크에 오시기 전에 유투브에서 “버드리 품바”를 검색해 보고 오실 것을 권유드린다.

어떤 이들은 듣는 순간부터 풉~하고 웃 거나.. 그거지?.. 얼씨구씨구,,등의 반응을 보이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기도 하는데..
마치 소수자가 된 것처럼 △▷▽ 들기도 한다.
OO는 조선 시대 이전 원효대사 때 시작 되어 긴 역사를 가졌지만 그 이미지는 가 볍고, 외면받는 장르 중 하나이다.
‘품바’가 처음으로 기록된 문헌은 신재효의 한국판소리 전집 중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이다.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조선 말기까지 '입 장고'라고 불리게 되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시절에 이르 기까지는 '입으로 뀌는 방귀'라 하여 '입방귀'라는 의미 로 일반화되었다. 민초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쌓였던 울분과 억울함, 그리고 그들에 대한 멸시나 학대 등이 한숨으로 뿜어져 나오는 한이 깃든 소리로 여겨진다. 예로부터 가난한 자, 역모에 몰린 자, 소외된 자 등 피지 배계급에 있는 자들이 걸인행세를 많이 해왔는데, 그들은 부정으로 치부한 자, 아첨하여 관직에 오른 자, 기회주의자, 매국노 등 문전에서 '방귀나 처먹어라! 이 더러운 놈들아!'라는 의미로 입방귀를 뀌어 현실에 대한 울분을 표출했다.

현재 품바는 장터나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동냥하는 각설이걸인의 대명사로 일반화되었다.


타령
가진 것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도를 깨달은 상태에서 의 겸허함을 의미한다고 하며, 구걸할 때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예, 왔습니다. 한푼 보태주시오. 타령 들어갑니다.' 등의 쑥스러 운 말 대신 썼다고들 한다. 한자의 '품(稟)'자에서 연유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도 있다. 또 다른 의미로 품앗이, 품삯 등에 쓰이는, 일하는 데 드는 수고의 의미인 '품'에서 연유했다고도 한다. 품바에 함축된 의미는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며, 타령이 처음 시작할 때와 끝날 때는 반드시 '품바'라는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렸다.

각설이 타령 의미 유래
백제와 고구려를 침략한 나당(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하자, 당시 지배층 일부가 떠돌이 나그네가 되어 거지로 변장하거나 정신병자 또는 병신으로 위장하여 걸인행각을 하는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광대나 재인 또는 거지로 전략하여 각설이라 부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비록 나라가 망하여 천한 삶을 살지만 자신들이 깨우친 우주자연의 이치를 백성들에게 널리 깨우쳐 민족의 정신과 얼을 부흥시키려는 민중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신라에서는 원효대사가 불교를 왕실과 귀족들만의 종교에서 벗어나 민중들에게도 불교의 깨우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하여 각설이 타령을 만들어 각설이패로 하여금 쉽고 흥미롭게 널리 전파하여 불러지도록 만든 것이라고도 한다.

이 후 조선시대로 건너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의 건장한 사내들이 전쟁터에서 사라지고 나니 여인들이 졸지에 과부가 되거나 혼기가 되어도 건강한 사내의 씨를 받을수가 없다는 표현까지 돌았다. 자식을 낳아야 대를 잇기도 하지만 그 당시 농사는 사람의 힘으로 대부분 짓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서자의 씨도 구하고 중의 씨도 구한다고 하면서 부른 노래라고도 한다. 각설이 타령인 품바를 통해 여러가지 풍자를 남겼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 절씨구씨구 들어간다.)

우리 민족의 삶에 품바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역사 속 많은 시련과 고초를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전문학의 한 부분으로도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각설이라는 퍼포머(전달자)를 통해 성현들의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민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만든 노래의 형식이 설법으로도 쓰였다.


연극 품바
김시라 각본의 일인극
품바 한명과 고수 한명이 짝을 이뤄서 각설이타령, 구전민요, 춤, 익살스런 몸짓 등 전통연희로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각설이패의 애환을 풀어낸다.

내용 :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자유당 말기까지 전국을 떠돌며 살다가 전남 무안 걸인촌(乞人村)에 정착한 각설이패 대장 천장근의 인생 역정을 각설이타령과 구전민요, 재담, 익살스런 몸짓과 춤사위로 풀어내는 일인극을, 김시라의 각본과 연출로 1981년 초연되었다. 1인 14역을 맡은 각설이의 걸쭉한 입담과 타령, 고수의 신명나는 장단, 관객을 참여시키는 마당극 형식, 정치풍자 등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996년에는 한국 연극 사상 최초 최장기 공연, 최대 관객 동원으로 ‘한국기네스북’에 수록되기도 했다. 매 공연마다 당시의 첨예한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한 풍자를 담아 시의성을 획득하였다. 광주민주화 운동의 내용을 담은 《품바》극은 1998년까지 총 4,000회의 공연을 가졌다.
김시라는 시인으로도 활동하며 시집 '방언시집' '상황시집' 등을 냈으며, 2001년 '품바' 2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던 중 2월 타계하였다.

평가 : 한국 연극사상 최초로 떠돌이 하층민 각설이패의 전통연희를 무대화하여 마당극의 외연을 넓혔고, 장기공연 레퍼토리를 정착하 였다. 1987년과 1993년의 미국 순회공연, 1993년 일본 공연, 1997년 호주 공연 등 해외공연도 가졌으며, 1988년에는 한국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판소리처럼 일인 다역을 맡은 1명의 배우와 고수가 벌이는 전통연희를 현대화한 양식적 특성 외에도, 원작에 매이지 않고 매 공연마 다당대의 정치·사회문제에 대한 풍자와 즉흥성이 이 공연의 생명력이라 할 수 있다.


나이트 품바 : 트로트와 대중음악
사회비판이나 풍자보다 노래와 악기를 더 많이 다룬다. 품바의 공연자는 민요와 소리꾼(국악)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점차 트로트와 뽕짝을 어우러져 특정 장소와 관객층에 따라 초점을 두며 관객이 원하는 공연을 한다.
* 소리꾼들을 되짚어 보면 과거 백제가 멸망했을때 귀족 들이 각설이 나타났다는 대목에서 광대보다는 재인쪽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공연자는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유명한 소리꾼의 경우 그 대우가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공연을 하게 되거나 좋지 않은 소속사에 조폭과 연결되어 곤란한 일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장터 안에 품바 공연
품바 공연을 보는 관객은 대부분 50대 이상의 연령층이다.
공연의 주된 무대가 실내가 아닌(쇼핑몰, 대형마트) 장터라는 점에서 연령층이 높은 이유도 있다.
관객들은 관람료를 적게 내는가?
생각보다 많은 관람료와 팁을 준다. (5만원 이상~100만원)
이 세대는 장터라는 곳이 편하고 전혀 불편하지 않다.
보는 세대에 관점에 따라 불편하거나 나와 먼 문화생활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안을 들여다 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다.


중년의 아이돌 버드리
품바 공연을 보다 보면 별별 관객들이 다 있는데 특히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는지 여성 품바 퍼포머를 함부로 대하는 남성 관객들이 있다. 한국 사회에 가부장적 태도가 여실히 드러나는데 이 때, 마치 속 시원한 말로 풍자나 조롱을 하는 버드리 퍼포머가 있다.
우연인지 희한하게도 항상 이런 관객이 공연장에 꼭 한 명 이상은 나타난다. 그 이유는 품바 공연이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사회의 젠더 감수성 부족한 모습들을 날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옛날 양반이 하층민을 조롱하거나 무시한 것과 같은 태도) 싸움 구경 같이 이러한 남성 관객을 유연하게 대하는 모습에 버드리 팬(여성, 남성)층은 다양하게 늘어난다.
일상과 사회에서 불편한 상황이 닥쳤을때 공동체(가족) 안에서 눌렀던 감정을 누군가 당차게 질러주는 상황을 보며 관객은 마치 자신이 된 것처럼 환호와 응원 그리고 관객료로 마음을 표현한다.

넘나드는 장

드랙과 품바 무엇이 다른가?
생각은 다르지 않던데..왜 그들의 공연은 촌스럽다고 생각되는가?
관객
말의 전달력만 다를 뿐...그말이 그말이었네...
생각은 같았다네...정말???
품바공연에는 젠더성을 가진 퍼포머는 없는가?
인터섹슈얼, 조선시대 사방지 당시 혐오의 시대에서 소수자 집단인 각설이패 안에서 함께 생활함
좀 더 유연해질 수 없는가?
** 본 글에서는 각설이가 아닌 퍼포머로 작성 하였다.
[이는 본인이 품바공연을 하는 각설이 분들을 퍼포머로 보았기 때문이다.]
** 장터 품바는 동시대 활동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작성되었다.
** 작성된 내용은 책이나 기록에 남겨진 것이 아닌 구술로 전 해진 내용들이다. 품바 퍼포머들의 역사를 조사하거나 문서 로 남겨진 자료가 있지 않기 때문에 생존에 있는 분들의 이야 기를 전해들은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현재 본인이 품바 퍼포머를 만나고 알아가는 단계에서 그 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적기에는 조심스럽고, 성급 하다고 생각하기에 품바 장르 안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 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적어보았다.

참고 및 발췌 ▼
[네이버 지식백과] 품바 (두산백과)
김시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참고문헌 『소설 품바시대 상, 하』(김시라, 영한문화사, 1987)

사이트 발췌 ▼
업코리아(http://www.upkorea.net)-김승덕 인터뷰

유튜브 화면 캡쳐 이미지 ▼
조환우목사 품바, 익산여신도회 연합 총회(십계명 품바)
지창수 품바, 아름이품바, 바다품바, 품바 수리수
버드리품바, 스트리터 파이터(춘리)

사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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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결은 지역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기록한 방식들을 가져와 시각화하고 있다. 사회 구조 안에서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하며, 일상에서 점차 외면받게 되는 일들이나 여성의 삶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