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없다: 인간 멸종 예상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인간에게 전파한 매개체로 천산갑이라는 멸종 위기종이 유력 후보 중 하나로 부상했다. 2019년 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섬에서 29.8t 규모, 약 23억 원에 해당하는 분량의 천산갑 사체가 냉동된 채 발견됐다. 시작은 하나가 아니겠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이 멸종시킨 것이 원인이 되어 역으로 생명을 잃는 그림이다.

개인 정보 보호를 무엇보다 강조했던 텔레그램은 이제 스스로 간수가 된 셈이다. 물론 그 간수는 많은 역사가 반복했듯 가해자를 수감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수감한 수용소이으므로 폭력을 막기 위해 건설한 감옥은 폭력 그 자체이다. 그 방에 갇혀 영원히 아무도 나오지 못하는 것은 보호가 박제와 맞닿은 영원의 순간이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온라인 세상에서 로그아웃하면 현실은 아무 곳도 갈 수 없는 격리와 배제의 세상이다. 나를 현실 세계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오직 가상 세계에만 존재해야 하지만 가상 세계에서는 수용소에 갇혀버린다.

트로이 목마는 정상적인 프로그램으로 위장하여 램에 상주한다. 바이러스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점령하고 모두 자의적, 타의적으로 그것을 열심히 나르는 트롤이 된다. 그 형태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알 수 없는 세계가 온다면 그것은 인간 멸종일까. 정상과 생명성의 기준은? 어떤 백신은 아직도 없다.

그 흔한 감기에도 백신은 여전히 없는데, 한 가지 특정한 바이러스가 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몇백 여종의 바이러스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f항목 추가중에서 다루고 있는 수많은 사회적 악성 바이러스도 종종 항체, 항원, 백신을 찾기 어렵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마스크를 쓰고 나 자신을 격리하고 확진자의 동선을 따라가며 내가 혹시 노출되지 않았는지를 검사하는 것뿐이다. 마치 n번방에 내 사진이 올라왔을지를 지켜보며. 완벽한 방역이라 칭송받는 과정에서.

f항목은 추가중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페미니즘은 성차별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 압제, 배제에 도전하는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프로젝트를 약칭하는 단어로 쓰였다. 바이러스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새로운 연구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인권의 사전에 다양한 f-(eminism) 단어를 추가하는 것처럼, f항목은 추가중이다.

2019년부터 '기술을 활용해 여성이 직접, 여성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7명의 여성 창작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여 각자의 연구를 진행했다. 백신 없는 불평등의 세상에서 이 프로젝트는 억압받는 자의 해방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새로운 백신을 모색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다. f항목은 추가중은 특히 이하를 여성 창작자의 시점으로 다루었다.


  • 1. 모든 것을 접촉 (터치) 으로 해결하면서도 서로에게 접근은 할 수 없는 바이러스의 시대
  • #동물 #인공 #퍼포밍 #치유 #몸의지성 #움직임 #신체


  • 1. 신체와 정체성 등 형식과 본질이 일치하지 않아 배제되는 삭제 정정의 사회
  • #품바 #장애 #인터섹슈얼 #젠더성 #결함 #포스트휴먼 #배제 #형태


  • 1. 사회 규범과 범죄의 속도가 동떨어진 근시안적 기술과 아노미 현상
  • #n번방 #폭력 #법리 #스마트연어양식장 #생명 #자본 #젠더그래픽


  • 글. 강민형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 소개

    해시태그 운동과 미투 운동 이후 문화예술계 내에서 젠더적 관점의 작업이 많이 소개되고 그 관심이 증대되었지만, 기술이 중점이 되는 미디어아트, 기술문화영역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참여도가 낮다. 이런 사회적 배경에서 여성을 위한 열린 기술랩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기술을 활용하고 기술문화에 대한 담론을 제기하면서 기존의 성차별적인 환경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스터디 그룹 활동을 지속해왔다. 2017년부터 이어진 활동을 통해 기술랩이 주목하는 문제는 결국 기술과 사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부재이고 이는 기술을 활용한 여성주의적 연구와 작업의 여러 사례들을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의 스터디 연구들은 기술을 직간접적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사회가 정의내리는 기술의 범위와 방식을 질문하고 그 경계를 새롭게 제시하는 작업들도 있다. 첨단 기술로 대표되는 좁은 의미의 기술 외에도, 여성으로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처하는 기술, 화려하게 전시용으로 활용되는 기술 이면에 가려진 기술 담론 등 기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매핑되고 필터링되고 도구화되는지 또한 생각하게 만든다.